제3장
알고 보니 그는 이혼조차 뒤로하고 윤설아를 만나러 급하게 나간 것이었다.
익숙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조서연의 심장을 덮쳤다. 고통은 무감각해질 정도였다.
결혼 후 2년 동안, 그녀는 인스타그램에서 윤설아의 애정 과시를 적잖이 봐왔다.
그때의 그녀는 무척 모순적이었다. 볼 때마다 괴로우면서도, 굳이 또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이런 자기 학대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조서연은 손가락을 움직여 이도현과 윤설아의 카카오톡을 하나하나 삭제했다.
그녀가 목욕을 마치고 막 옷을 입었을 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이도현에게서 온 전화였다.
윤설아와 함께 있는 거 아니었나? 어떻게 그녀에게 전화할 시간이 있었을까?
조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전화를 받았다. “도현 씨?”
“네가 설아 카카오톡 삭제했어?”
“네, 왜요?”
“네가 감히 왜냐고 물어?” 이도현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설아가 네가 출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부 인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자기가 삭제된 걸 발견했어. 네가 아직도 자길 미워한다고 생각해서, 예전에 너한테 밀쳐져 계단에서 굴렀던 장면까지 떠올리며 감정이 무너졌다고! 조서연, 너 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의 질책과 비난에 조서연은 심장이 도려내지는 듯 아팠다. 그녀는 고통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도현 씨, 그 사람 카카오톡을 삭제하는 건 제 자유예요.”
“네 자유인 건 맞지. 하지만 설아는 환자잖아!” 이도현이 강조했다. “게다가 너 때문에 휠체어를 타게 돼서 감정이 원래부터 예민하고 약하다고. 네가 그 애 감정 좀 헤아려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조서연은 눈을 감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당신 심장처럼 소중한 분이 그렇게 연약하시다면, 제가 더 멀리 떨어져 있어야겠네요. 언제 부딪히거나 스쳐서 또 제 탓을 할지 모르니까요.”
“조서연, 너…….”
조서연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이도현의 번호까지 차단했다.
그녀는 옷을 챙겨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라면을 끓여 먹고는 곧장 추모 공원으로 향했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조서연은 우산을 쓴 채 외할머니의 묘비 앞에 아주 오랫동안 서 있었다.
운율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이도현이 보였다.
조서연은 자못 의아했다. 평소 그는 윤설아를 만나러 가면 하루 종일 함께 있다가, 그녀가 잠든 것을 보고 나서야 돌아오곤 했다.
조서연은 그의 심상치 않은 행동의 이유를 캐묻고 싶지 않았고, 그를 무시한 채 곧장 위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거기 서.”
등 뒤에서 남자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서연은 걸음을 멈췄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조서연, 배짱이 두둑해졌네. 감히 내 전화를 끊고, 날 차단까지 해?”
조서연이 발을 떼 다시 걸어가려 하자,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확 낚아챘다. “너한테 말하고 있잖아. 감옥에 갔다 오더니 귀까지 먹었어?”
조서연의 심장이 날카롭게 찔리는 듯 아팠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네, 저 감옥 갔다 왔어요. 인생 전체가 망가졌는데, 아직도 만족스럽지 못하신가요?”
이도현은 그녀의 붉게 부은 눈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울었어? 추모 공원 가서 외할머니 뵙고 온 거야?”
조서연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제가 할머니 임종도 못 지켰는데, 이제 와서 찾아뵙는 것도 당신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이도현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조서연, 그날 널 교도소로 돌려보내라고 고집했던 건, 네가 너무 슬퍼할까 봐 그랬던 거야.”
“제가 슬퍼할까 봐요?” 조서연은 그대로 웃음을 터뜨렸다. 비참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었다. “저한테 거짓말하는 것조차 성의가 없네요. 그런 어설픈 이유를 대다니.”
그녀는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도현 씨, 저 지쳤어요. 이혼해요.”
……
조서연은 안방 드레스룸으로 돌아와 낡은 여행 가방 하나를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결혼 후 이 씨 집안에서 받은 것은 단 하나도 가져가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짐은 많지 않았다.
“조서연, 그만 좀 해.” 등 뒤에서 남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작 1년 감옥에 있었던 거잖아. 더군다나 내가 특별히 지시해서 안에서 조금도 고생 안 하게 해 줬는데, 뭘 더 바라는 거야?”
옷을 챙기던 조서연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지시하셨죠. 제가 안에서 먹는 식단은 다른 수감자들과 달랐어요. 매 끼니 돼지 간 아니면 시금치였죠. 전부 보혈에 좋은 식재료들이요. 제가 언제든 윤설아에게 수혈을 해 줘야 했으니까.”
이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결국은 설아 일 때문에 이러는 거군. 조서연, 너한테 설아에게 수혈하라고 한 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어. 너도 의학을 공부했으니, 의사로서 자비심 정도는 갖춰야지. 그리고 보상도 해 줬잖아.”
“자비심이요?” 조서연은 실소했다. “환자 하나 살리겠다고 죽기 직전까지 수혈하는 의사를 보신 적 있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보상이란 게, 이런 건가요?”
조서연은 벽면 전체를 채운 가방들을 가리켰다. 이 가방들의 가치는 적어도 수억 원은 족히 넘었고, 수많은 여자들의 꿈이었다.
“수혈 한 번 할 때마다 가방 하나씩 사 주는 거요. 그것도 윤설아가 고르고 남은 걸로요?”
그녀의 손에 들어온 모든 가방은 윤설아가 고른 것을 이도현이 결제한 것이었다.
윤설아는 먼저 자기가 마음에 드는 것을 챙기고, 남은 것들 중에서 조서연에게 줄 과시용 디자인의 가방을 하나 골라주었다. 가격은 비쌌지만, 일상적으로 들고 다닐 만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가방을 원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지만, 그들은 모두 수혈 한 번에 가방 하나를 받는 것이 조서연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조서연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 가방들, 단 하나도 가져가지 않을 거예요. 전 처음부터 제 피를 팔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이도현은 손을 들어 미간을 꾹 눌렀다.
결혼 생활 내내 조서연은 늘 온순했다. 가끔 토라질 때는 있었지만, 한 번도 그를 거역한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이렇게 단호하게 말한 적도 없었다.
이도현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 “감옥에서 막 나와서 기분 안 좋은 거 알아. 그만 투정 부리면 안 될까? 밥 먹으러 가자. 경 아주머니한테 네가 좋아하는 음식 해달라고 했어.”
조서연은 그의 손을 밀어내고 여행 가방을 든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떠올랐다. 남자가 그녀를 가로로 번쩍 안아 든 것이었다.
조서연이 저항할 틈도 없이, 그녀는 푹신한 침대 위로 내려놓아졌다.
남자가 몸을 겹쳐왔고, 조서연의 두 손은 그에게 손쉽게 붙잡혀 머리 위로 눌렸다.
익숙한 남성적인 페로몬 향기가 확 끼쳐왔다. 이도현은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나직한 목소리에 매혹적인 섹시함을 실었다. “이 사모님, 이제 화 풀면 안 될까? 오늘 밤 내가 기분 좋게 해 줄게, 응?”
조서연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예전에 그녀가 가끔 화를 낼 때면, 그의 이런 도발을 이기지 못하고 금세 화를 풀곤 했다.
나중에는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마다 그녀를 끌어당겨 관계를 가졌다.
그는 잠자리에서 지배욕이 극도로 강해서, 매번 조서연은 울면서 애원할 때까지 그에게 시달렸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하나하나 다 들어주었다.
남자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그녀의 상의 단추를 풀었다.
조서연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다급하게 버둥거렸다. “싫어…… 싫어요…….”
“싫다고?” 이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정욕으로 가득 찬 두 눈이 침대 아래의 여자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지금 싫다고 하는 것도 너고, 좀 이따가 더 해달라고 매달리는 것도 너일 텐데…….”
조서연의 얼굴은 핏방울이 맺힐 듯 귓불까지 새빨개졌다.
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네가 없던 이 1년, 나도 힘들었어……. 적어도 삼백일 밤은 야근을 해야 겨우 자제할 수 있었지…….”
전면 창밖은 밤의 장막에 휩싸여 있었고, 그치지 않는 비만이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방 안의 온도는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혼 3년 차, 이도현은 조서연의 몸을 이미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고, 능숙하게 그녀를 애무했다.
조서연은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하며 떨렸다. 그녀는 이성을 유지하며 벗어나려 애썼지만, 남자는 그녀를 함께 탐닉의 늪으로 끌어내리기로 작정한 듯했다.
“조서연, 나한테 줘…….”
